한 줄의 노을
햇볕이 지나치게 따가워서, 잠시 그늘 아래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나무는 무성하게 그늘을 드리워, 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 아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함이 나를 감쌌다. 밖은 여전히 무더웠지만, 나만의 작은 쉼터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안식을 찾을 수 있었다. 눈앞에는 녹음이 짙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들의 잎이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저 한 점, 눈을 닫고 있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불현듯 노을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늘이 점차 붉어지던 그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나의 모든 감각이 그 빛을 따라갔다. 노을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했다. 그 빛은 하나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을 기념하는 듯한 붉은 색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일깨워줬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밀스럽고도 고요한 아름다움은 늘 나를 매료시켰다.
어릴 때는, 집 앞 논밭에서 놀다 보면 하루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 하늘은 점점 붉어지며 일몰이 찾아왔다. 나는 그때마다 그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빛을 두고 "하늘이 불타고 있다"고 표현하곤 했지만, 나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다. 하늘이 붉어지는 그 순간,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감정들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나의 또 다른 모습, 숨겨져 있던 작은 소망들이 저 멀리 붉게 물드는 하늘을 따라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이 노을은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동안, 또 이렇게 붉은 하늘을 계속해서 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주 지나쳐버리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노을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나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놓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생각은 나를 슬프게 만들기보다는 편안하게 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렇듯, 지나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있는 노을은 결국 내가 지나온 시간이 만들어낸 빛깔이었고, 그 모든 과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하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더욱 깊어지고 붉어지며 노을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그 붉은 빛을 가슴 속에 담았다. 이 빛이 내일도, 또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나를 비추어 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노을은 단지 하늘을 물들인 붉은 빛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삶에 대한 작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시간은 흐르고, 하루는 저물어갔다. 나는 서서히 나무 그늘을 떠나 다시 길을 걸어가며, 그날의 노을을 마음 속에 간직했다. 오늘도 내일도, 어쩌면 그 이상으로도 계속될 나의 하루들 속에서, 나는 그 노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노을은 지나가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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