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
가을이 되면 매해 즐겨 찾는 산책로가 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로 접할 수 있는 길로, 양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가지런히 서 있다.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이 우거져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가려 주고, 겨울이 되면 나뭇잎이 떨어져 텅 빈 가지들이 마치 앙상한 손가락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단연 가을이다. 나뭇잎들이 선명한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 그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그 길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나무와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을 느꼈다. 발끝으로는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이 밟힐 때의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에는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그저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소리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낙엽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다르게 느껴진다. 떨어진 잎들 속에서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느낌이 든다.
산책로 중간쯤에는 늘 쉬어가는 벤치가 하나 있다.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가을 햇살을 맞아 잎들이 반짝이는 모습과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어우러져 작은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면, 나무들이 길게 뻗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가을 특유의 깊고 맑은 푸른색이다. 그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자연의 아름다움과, 내가 평소에 얼마나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가을 산책을 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않아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는 봄이면 새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녹음이 짙어져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가을이면 찬란한 색을 자랑하며 겨울을 준비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람과 달리 그들은 삶의 주기가 정해져 있고, 그 주기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이를 생각하다 보니, 나 역시 조금 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늘 일이나 가족, 인간관계 속에서 수많은 역할을 맡아 살아간다. 때로는 그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진짜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씩 이렇게 자연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멀리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혹은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그저 자연의 소리를 듣고 계신 걸까? 할아버지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평온해진 마음이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느긋하게 삶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발밑에서는 낙엽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어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가을 산책로가 내게 전해 준 것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작은 깨달음들이었다. 사계절을 보내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나무들처럼,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내 주변과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더 자주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우리가 속한 세상에서 '성공'과 '목표'라는 말에 너무 얽매여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삶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도 충분히 많이 존재한다. 그렇게 가을 산책을 통해 얻은 작은 깨달음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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